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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2009) — 사랑이라는 이름의 광기, 그 끝에서 남은 어머니의 그림자

by 리뷰대디 2025.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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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선일까요, 아니면 죄일까요. ‘마더’를 보고 난 후 그 경계가 영원히 흐려졌습니다.

들어가며 — “엄마는 모든 걸 할 수 있어요”

마더를 처음 봤을 때, 마음이 꽉 막혔습니다. 잔인한 장면보다 무서웠던 건, 그 안에 담긴 ‘진짜 사랑’이었어요. 세상 어떤 공포보다도 강한 감정이죠. 봉준호 감독은 이번엔 사회를 비판하지 않고, 인간의 본질을 해부합니다. 그중에서도 ‘모성’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가장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보고 나면 묘하게 조용해지지만, 그 조용함 속에 깊은 균열이 남습니다.

“엄마는 널 믿어.” 단순한 대사인데, 그 안엔 폭풍이 숨어 있었어요. 믿음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너무도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어머니의 사랑 — 눈먼 확신의 온도

주인공 ‘엄마’는 지능이 약한 아들을 위해 모든 걸 걸죠.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뒤집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모양이 점점 이상해집니다. 처음엔 헌신처럼 보이던 행동들이, 어느 순간 광기로 변하죠. 사랑이라는 단어로 모든 걸 정당화하는 순간, 인간은 무섭게 변합니다.

저는 영화 후반부에서 엄마가 진실을 알게 되는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의 그녀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 아이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계속 붙잡고 싶었던 거겠죠. 봉준호 감독은 거기서 카메라를 아주 오래 머물게 합니다. 마치 우리에게 묻는 것 같아요. “만약 당신이라면, 그 아이를 지켜줄 건가요? 아니면 버릴 건가요?”

봉준호의 시선 — 죄와 사랑 사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엔 늘 사회가 등장하죠. 하지만 마더는 사회보다 ‘한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듭니다. 그는 사랑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세상을 속이고, 심지어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관객은 그 광기를 비난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우리 안에도 그 감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영화 속 장면들은 차갑지만, 동시에 따뜻합니다. 그것이 봉준호 특유의 모순된 미학이죠. 그는 인물을 몰아붙이지만, 절대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잔인한 아름다움입니다. 진실을 알고 난 후에도, 엄마는 춤을 춥니다. 태양 아래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장면은 미친 듯이 슬펐어요. 슬픔이 아니라, 완전한 공허의 모습이었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장면

저는 초반부, 엄마가 침을 바르며 아들의 상처를 닦아주던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그건 단순한 돌봄의 행위였지만, 동시에 이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장면이었죠. 엄마는 세상의 먼지를 닦아주려 하지만, 그 손끝이 오히려 상처를 더 깊게 합니다. 그게 사랑의 역설이에요. 보호하려다, 망가뜨린다. 감싸려다, 가둔다. 영화는 그 단순한 진실을 잔인할 만큼 천천히 보여줍니다.

후반부의 ‘침묵의 장면’은 여전히 제게 불편합니다. 엄마가 모든 걸 알고 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죠. 그냥 흙먼지 속을 걸어갑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상하게 안도했습니다. 최소한 그녀는 끝까지 인간이었으니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지었지만, 그 죄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니까요.

영화를 보고 난 후

마더를 보고 나면,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너무 조용하고, 너무 느립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모든 감정이 녹아 있죠. 엄마의 표정 하나, 손짓 하나에 인생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시려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정말 죄가 될 수 있을까?” 아마 봉준호 감독은 그 질문을 관객에게 남기고 싶었던 걸 겁니다.

마더는 모성의 신화를 깨뜨리고, 인간의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아름답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사랑. 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인 사랑. 어쩌면 그것이 진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끝나도, 오래 남아요.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천천히 흩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묘한 따뜻함이 남습니다. 사랑은 결국, 그렇게 남는 것 같습니다.

주의: 본 글은 개인적인 감상과 해석에 기반한 리뷰이며, 영화의 내용에 대한 서술은 관객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