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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2022)

by 리뷰대디 2025.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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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들어가며 —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

헤어질 결심은 단순한 멜로가 아닙니다. 박찬욱 감독은 사랑을 수수께끼처럼 다룹니다. 사랑이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끝내 이해하고 싶어하는 감정이라는 걸 이 영화는 고요한 화면 속에 담고 있습니다. 사건은 형식이고, 감정은 본질이죠. 사랑과 의심이 교차하는 그 경계에서 우리는 해준과 서래의 비극을 따라가게 됩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땐, 속도가 느리고 대사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선이 자꾸 머물렀습니다. 정적 속에 묘한 긴장감이 있고, 침묵 속에 감정이 숨어 있었거든요. 이 영화는 사랑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호함을 아름답게 포착합니다.

해준과 서래 — 추락사에서 시작된 감정의 균열

형사 해준(박해일)은 규칙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추락 사건의 용의자 서래(탕웨이)를 만난 순간, 그의 세계는 조용히 무너집니다. 그 만남은 수사이자,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의심하면서도 끌렸고, 감정과 직업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립니다.

경찰서의 냉랭한 조명 아래 앉아 있던 서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슬프지도, 두렵지도 않은 눈빛이었죠. 해준은 그 눈을 본 순간 이미 선을 넘어섰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논리보다 ‘시선’으로 먼저 시작되니까요.

사랑과 의심 — 이해할 수 없기에 더 깊은 관계

시간이 지날수록 해준은 감정의 균형을 잃습니다. 그는 서래의 휴대폰을 뒤지고, 녹음을 반복해 듣습니다. 수사가 아니라 감정의 탐색이 되어버린 셈이죠. 사랑은 결국 상대의 언어를 해독하려는 욕망입니다. 그는 그녀의 말, 숨, 시선을 읽으려 하지만 끝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더 깊어집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고 싶어하는 마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니까요.

박찬욱의 연출 — 감정의 프레임으로 완성된 미학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모든 과잉을 걷어냈습니다. 폭력도 복수도 없지만, 긴장은 여전합니다.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카메라, 인물의 숨을 포착하는 프레임. 대사는 적지만, 침묵은 더 많은 걸 말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우리는 물리적 접촉보다 훨씬 강렬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클라이맥스입니다.

그리고 바다. 이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죠. 바다는 두 사람을 이어주면서 동시에 갈라놓습니다. 서래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이 바다였다는 건 필연처럼 느껴집니다. 그녀는 사랑을 기억으로 남기지 않고, 파도 속으로 묻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헤어질 결심’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

서래가 바다에 몸을 묻고, 해준이 모래 위에 무너져 외치는 장면은 여전히 잊히지 않습니다. 바다는 대답하지 않았고, 파도만이 그들의 마지막 말을 대신했습니다. 그 순간, 사랑은 완성되지 않고 영원해졌습니다. 끝나지 않았기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사랑은 가장 선명해집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헤어질 결심은 결국 ‘사랑의 진실’을 묻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이해하려 하지만, 사랑은 애초에 이해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순이니까요. 박찬욱은 그 모순을 가장 정교하고, 동시에 따뜻하게 그려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오래 남는 건 해준의 외침이 아니라, 서래의 침묵이었습니다. 어떤 사랑은 완성되지 않아서 더 오래 기억됩니다. 헤어질 결심은 그런 사랑을 가장 우아하게 담아낸 영화입니다. 언젠가 사랑에 아파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분명 자신을 보게 될 겁니다.

주의: 본 글은 개인적인 감상과 해석에 기반한 리뷰이며, 각자의 시선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