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1 올드보이 (2003) — 인간이란 이름의 미로, 그 끝에서 마주한 얼굴 “너는 왜 나를 가둔 거야?” 그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된, 너무나 인간적인 악몽.들어가며 — 충격보다 깊은 여운올드보이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말해 충격이 컸습니다. 잔혹한 장면 때문이라기보다, 그 안에 깃든 감정이 너무 복잡했거든요. 복수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복수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 너무 낯설고 무거웠습니다. 이 영화는 누가 옳고 그르냐를 말하기보다,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찌르듯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다 보고 나서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2003년이라는 시점을 떠올려보면, 한국 영화가 한껏 실험적이던 시기였죠. 그때 박찬욱 감독이 보여준 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감정의 깊이를 비틀어 보여주는 새로운 방법이었습니다. 그.. 2025. 10. 8. 버닝 (2018) — 사라진 사람들, 남겨진 불씨 그리고 불안의 시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상일까. ‘버닝’은 그 질문을 끝내 풀지 않는다. 그게 오히려 더 현실 같다.들어가며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모든 게 흔들렸다버닝을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 조용했습니다. 큰 사건도 없고, 음악도 절제되어 있는데도 마음이 불안했어요. 뭔가가 계속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었죠. 이창동 감독은 이번엔 ‘부재’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방식이죠.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 건지 계속 궁금했습니다. 사람? 진실? 혹은 우리 자신?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어요. 설명되지 않는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납득이 됩니다. 마치 현실도 그런 것처럼요. 다 보고 나면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묘한 진실이 .. 2025. 10. 8. 살인의 추억 (2003) — 비 오는 논길에서 멈춰 선 시선 하나 그때 그 장면을 아직도 분명히 기억합니다. 화면이 젖어 있고, 숨이 아주 조금 짧아지던 순간.들어가며 — 첫 감정부터 적겠습니다처음 봤을 땐요, 그냥 스릴러겠거니 했습니다. 연쇄살인, 형사, 쫓고 쫓기는 이야기. 그런데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버스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이 이상하게 낯설더라고요. 불이 꺼진 골목을 지나는데 바닥이 눅눅했습니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기분의 문제겠죠. 이 영화는 ‘범인을 찾는 이야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보며 살아왔는지’ 묻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조금 난감했어요. 끝났는데 끝나지 않은 것 같아서요.영화의 분위기 — 칙칙한 흙빛, 그런데 괜히 아름다움화면이 전반적으로 탁하죠. 흙, 풀, 낡은 사무실의 형광등, 먼지. 그런데 그 질감이 그냥 더럽거나 우울하게만 느.. 2025. 10. 8. 이전 1 2 3 4 다음